황복사 (2) 썸네일형 리스트형 작은 크기, 많은 이야기 문화재의 보고인 황복사지 삼층석탑과 황실사찰 황복사 낭산 동쪽 산자락 끝에 다소곳이 외롭게 서있는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구황리 삼층석탑이라 했는데 발굴할 때에 황복 혹은 왕복이란 문양이 발견되고 사서에 낭산 동쪽에 황복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황복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황복사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황실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있는 황실사찰 황복사 이곳 지명이 구황리 혹은 구황동이라 하는데 원래 '황'자가 들어가는 9개의 사찰이 있다고 그렇게 부릅니다. 그중의 한 곳이 바로 황복사입니다. 황복사의 최초 건립은 선덕여왕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존호가 '성조황고'인데, 분황사처럼 '황'자를 넣어 황복사를 만들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황복사는 역사서에는 여러번 등장하는데 먼저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출가했다고 합니다.. 전제왕권을 확립한 준비된 왕 신문왕, 그리고 신문왕릉 신라 31대 신문왕, 정명은 문무왕의 둘째 아들로 재위 기간은 681년~691년으로 11년간입니다. 짧은 재위 기간이지만 어떤 왕들보다 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국사시험에 꼭 한 문제 정도는 나올 정도로 중요한 왕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신문왕의 업적위주로 알아보고, 왕릉에 대해서는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준비된 왕, 신문왕 665년 동복형 소명태자가 죽자 태자에 책봉되었습니다. 신문왕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태종 무열왕과 아버지 문무왕의 삼국통일과 나당전쟁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자랐어요. 성인이 되고, 태자가 되면서부터 이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마 배우고 느끼고 있었겠지요. 진골귀족의 득세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면 전쟁 공신들은 거만해지며, 자신들의 공로..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