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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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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흠돌의 반란, 통일 전쟁의 후유증 김흠돌의 반란은 신문왕이 즉위할 때에 일어난 반란으로 이후 통일신라는 체제 정비를 통해 확고한 전제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그럼 오늘은 김흠돌의 반란이 일어난 배경과 결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시대적 배경 삼국통일과 나당전쟁을 끝냈지만,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이 언제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혼란의 상황이 계속되고, 당나라 또한 언제든지 또다시 침략해 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무신 진골귀족들의 세력은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지요. 태종 무열왕이 진골로 왕이 되면서, 왕위를 노릴 수 있는 진골의 수도 엄청 많아졌습니다. 진골이면 누구나 '나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왕의 권위에 심각한 타격이 되었어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신라사회를 지탱하는 철저한 신분제도인 골품제와 화백회의 신라의 지배계층 및 사회를 이해하는데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서 화백회의, 골품제, 화랑제도 그리고 불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네 가지만 공부하여도 신라사회를 좀 더 잘 알 수 있어요. 오늘은 화백회의와 골품제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추후에 별도로 하나씩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화백회의 화백회의는 국가 중대사에 대한 귀족들의 협의체입니다. 고대 사로의 부족장 회의인 남당 제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진골 출신의 귀족들의 모임으로 의장은 상대등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은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야 안건이 통과된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왕권을 견제할 수있을 정도로 강력하였습니다. 25대 진지왕의 경우 음란하다는 이유로 화백회의에서 폐위를 결정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어요.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