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왕 (3) 썸네일형 리스트형 효소왕과 성덕왕의 왕권강화와 뿌리깊은 진골세력들의 권력다툼 이번에는 효소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효소왕대의 정치상황과 치적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고, 성덕왕과의 왕위 계승과 성덕왕대의 귀족들과의 권력관계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어린 효소왕과 신목왕후의 섭정 효소왕은 신문왕에 이어 6살의 나이로 등극한 7C 마지막 왕입니다. 어린 나이로 인해 어머니 신목 왕후의 섭정과 아버지 신문왕 등극 시 발생한 김흠돌의 난을 진압한 왕족 출신 공신들에 의해 비교적 안정된 정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경주에 남시와 서시를 설치해 지증왕 때의 동시와 함께 3개의 시장을 갖추었어요. 이는 통일 후 경주에 상업과 유통이 크게 발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제도를 정비 설치하고, 옛 고구려 남부지역인 패서(송악) 지역을 개발하고 축성을 하였어요. 발해가 건국하자.. 신라 최대의 전성기 성덕왕, 그리고 격식 갖춘 성덕왕릉 오늘은 성덕대왕 신종으로 더 잘 알려진 성덕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왕들과 다르게 성덕왕을 '성덕대왕'으로 부릅니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고 문화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지요. 성덕대왕의 치적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성덕대왕릉의 특징은 어떠한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선대 왕들의 탄탄한 기반 33대 성덕대왕은 이름 그대로 굉장한 덕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선대왕들인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완성하고, 신문왕이 나라의 기반을 튼튼이 한 덕분에, 효소왕을 이은 성덕왕은 신라 최대의 안정기를 맞이할 수 있었지요. 사서의 기록에 출생에 관한 것은 없으나 효소왕처럼 10대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8C초부터 약 35년간, 다른 왕들에 비교해 오랜 기간 재위하였습니다. 재위 초기 권신들에 .. 작은 크기, 많은 이야기 문화재의 보고인 황복사지 삼층석탑과 황실사찰 황복사 낭산 동쪽 산자락 끝에 다소곳이 외롭게 서있는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구황리 삼층석탑이라 했는데 발굴할 때에 황복 혹은 왕복이란 문양이 발견되고 사서에 낭산 동쪽에 황복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황복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황복사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황실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있는 황실사찰 황복사 이곳 지명이 구황리 혹은 구황동이라 하는데 원래 '황'자가 들어가는 9개의 사찰이 있다고 그렇게 부릅니다. 그중의 한 곳이 바로 황복사입니다. 황복사의 최초 건립은 선덕여왕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존호가 '성조황고'인데, 분황사처럼 '황'자를 넣어 황복사를 만들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황복사는 역사서에는 여러번 등장하는데 먼저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출가했다고 합니다..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