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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사찰

불교의 발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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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도불교의 발전과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경전과 불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초기 불교 계파의 성립과 분열 과정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고, 대승불교의 생성과정과 전파까지 공부해 보겠습니다.

 

부처님이 처음 설법한 녹야원
부처님이 처음 설법한 녹야원. 출처 : 법보신문

 

근본(원시) 불교시대

1차 결집

 석가모니 부처가 입멸(BC 544년) 후 90일이 지나 부처의 제자 500명이 모여서 부처의 말씀을 부처가 직접 설하신 내용인 경장과, 부처님이 정한 계율에 관한 내용인 율장에 대한 정리를 합니다. 으뜸 제자가 한 구절을 암송하면 나머지 모인 사람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부처님의 말씀이 맞다고 하면 확정을 하지요. 이런 과정을 결집이라 합니다. 1차 결집은 경과 율에 관한 내용을 암송하는 방법으로 구전됩니다. 그때의 지식 전달 수단은 암송에 의한 구전입니다. 

 

탑의 건립

 스투파(탑)는 부처 입멸 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어요. 이는 부처님의 무덤이지요. 부처님 사후 뚜렷한 경배의 대상이 없던 시기에 탑은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생전의  부처님과 동일시할 수 있는 유인한 대상이었어요.

 

2차 결집

 1차 결집 후 100여 년은 아무 탈없이 지나갔지만, 이후 승려들의 숫자가 많아져 지켜야 할 계율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어요. 부처님도 입멸할 때에 '사소한 계는 버리거나 바꾸어도 좋다'는 유연한 입장을 피력하였지요. 이에 중요한 10가지 계율의 수정 문제로 교단이 모여 결집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2차 결집입니다.

부파불교시대

근본 분열

 이 2차 결집 과정 중 계율에 관한 생각의 차이로 크게 2개의 부파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를 근본 분열이라 합니다. 기존 계율을 그대로 지키자는 전통 보수의 상좌부와 계율을 수정하여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불교에 대한 접근을 높이자는 진보적인 대중부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3차 결집

 부처 사후 200년이 지나서 쿠산 왕조의 아쇼카왕 때  8만여 개의 탑을 건립하는 등 대대적인 불교 진흥 정책을 하게 됩니다. 이에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따르자 교단이 비대해지고 어지럽혀져 이를 바로잡기 위해 3차 결집을 하게 됩니다. 

 

지말 분열

한번 깨지면 두번째는 더 쉽듯이, 한번 분열 후 학파나 지역, 인종에 따라 세부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상좌부 불교는 상좌부대로 대중부는 대중부 내에서 각각 여러 분파로 갈라지게 되는데 이를 지말분열라 합니다. 

 

경전의 성문화

 3차 결집 후 BC 2C경이되자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부처의 모든 가르침인 경과 율에 대하여 비로소 문자화가 시작되지요. 그동안 성스러운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나타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인도 남부 즉 스리랑카에서 시작된 경과 율의 문자화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좌부의 승려 중심, 교단 중심의 불교가 출가자와 재가자 구분 없이 누구나 쉽게 경과 율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어요. 즉 그동안 누가 더 많아 암송하느냐에서, 이제 누가 부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느냐로 바뀌게 되었지요. 그리고 경, 율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내용과 해석서인 논이 생기고 정리가 되어, 경장, 율장 그리고 논장의 삼장이 드디어 완성되었네요.

 

불상의 생성

 초기 불교시대에는 불경의 문자화처럼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을 금기시하였어요. 그래서 약 500년 동안은 불상이 없는 무불상시대가 되었지요.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간다라 지방에 영향을 미치면서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어요. 이 시기가 BC 약 1C경 이었습니다.

 

초기 대승불교의 탄생

 진보적인 대중부 부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지요. 각 부파는 자기들의 정통성을 내 세우기 위해 교학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아라한이 되기 위한 개인의 해탈에 몰두하여 일반 재가자들을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후를 기점으로 신앙의 대상인 불상이 보급되고, 경의 문자화가 이루어져 보다 쉽게 누구나 경전에 접근할 수 있어서 새로운 불교사상이 생겨나게 되었어요.  특히 불탑을 중심으로 한 재가자와 대중부의 부파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혁신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대승불교라 합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불성 사상)과, 신도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형인 보살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어요. 그리고 자비와 이타적 세계관의 표현인 보살의 도입은 많은 일반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때에 대승 계열의 경전인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등의 경전이 만들어지고, 서역 티베트, 중국으로의 국제적인 불교 전파가 일어나게 됩니다.

 

4차 결집

 AD 2C 중엽 쿠산 왕조의 카니슈카 왕에 의해서 소승 계열의 경전을 결집하였는데 이것을 4차 결집이라 합니다. 이때 인도 불교는 카니슈카 왕에 의해 또 한 번 중흥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중국으로 많은 불교 학승이 건너가 본격적인 대승 계열의 북방 불교가 전해지게 됩니다.

소승불교라 일컬어지는 상좌부 불교는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더욱더 발전해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갑니다. 이를 남방불교라 합니다.

 

대승불교의 발전 

 대승 계열 경전이 나타나고, 용수와 마명 같은 승려에 의해 이론적 근거가 만들어지면서 대승불교가 확립되었어요. 이때 공사상과 유식사상이 생겨나  약 2C ~ 7C까지 두 파가 주류를 형성하게 됩니다. 6C 경에는 선종이 달마대사에 의해 중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라마불교 또는 티베트 불교라 일컬어지는 밀교가 7C경 티베트로 전파되기도 합니다.

 

인도에서의 불교의 쇠퇴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교는 내부적으로 점차 교리와 계율에 집착해 교학적으로 변모합니다. 교단의 경제적 후원자인 왕과 귀족들만을 위한 불교로 변하여 일반 민중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지요. 또한 외부적으로는 예전의 전통적 종교인 바라문교가 힌두교로 바꾸어 불교적 요소를 도입하고, 일반 민중의 관혼상제 및 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힌두교화 되었습니다. 이에 더해 불교의 최대 발전 요인이 평등사상인데, 일정한 평등사상을 가진 이슬람 문화의 침투는 불교 쇠퇴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11C 침입한 이슬람교도의 무자비한 박해로 민중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불교는 인도의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현재 불교도는 1%도 되지 않고,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은 국교가 불교일 정도이고, 동아시아에서도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하는 걸 보면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 불교의 발전과정을 시간순으로 나열해 보았습니다. 종교나 문화나 어떤 것이 발전하는 과정은 한두 개의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것은 너무나 부분적인 것이라서 사실 많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사상은 너무나 깊고 넓어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또한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잘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대표적인 용어들이라도 쉽게 표현해보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히 생각하고 다시 공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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