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종교로의 성립과 발전
고대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불교는 우리 역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종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도 불교를 믿는 국민들도 상당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 불교용어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공부를 하거나 답사여행을 갈때면 불교유적을 많이 접하게 되지요. 특히 신라의 경우는 더 그러합니다.
그럼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온 불교는 언제 생겨나게 되었고,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이 모든 의문 해결의 출발은 석가모니가 살고 있던 인도의 시대 상황과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브라만교를 먼저 이해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불교와 같은 거대한 종교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길 수가 없겠지요. 기존 사회의 사상적 변화나 모순들에 대한 반동이랄까, 변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어야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1> 인도지역을 침입한 드라비다인
인도의 원주민은 인더스 문명을 꽃피운 드라비다인들입니다. 그런데 BC. 1500년경 북쪽 초원의 유목민인 아리아인들이 인더스강 지역을 침입해 드라비다인들을 지배하게 되지요. 이후 BC. 1000년 경에는 갠지스강 유역으로 까지 지배영역을 확대하고 점차 인도 전역에 영향력을 넓혀 나갑니다.
2 > 아리아인의 철저한 신분 제도인 카스트제도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신분제도인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정복민은 피정복민을 지배합니다. 태어날때의 대물림된 신분은 세습이 되어 벗어날 수가 없지요. 하층민은 자기의 현재를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가 아니라 본인이 지난 생에서 착한 일을 덜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이러한 사상과 생각은 브라만교와 그 경전인 베다의 영향 때문입니다. 즉 신분제도를 확고히 하기위한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에요.
3 > 브라만의 경전인 베다의 사상
브라만교는 아리아인들의 오래된 경전인 베다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이념, 종교라고 할수있습니다. 이들 아리아인들은 그들 고유의 이념인 브라만교를 가지고 선주민을 노예처럼 부려 먹지요.
브라만교는 베다라는 경전에서 이 세상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만 즉 "범(梵)"과, 자아 본질인 개개인인 아트만 "아(我)"로 구성되는데 이 둘은 원래 하나다라는 범아일여 사상을 주창합니다. 지배계급이나 피지배계급이 같고, 브라만이나 천민인 수드라나 모두 같다며 사회의 일체성을 강조하지요.
또한 외부가 아닌 내면의 신을 찾고, 만물에 있는 브라만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생의 업보 때문에 현재의 나의 모습이 되고,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즉 선한 행동은 좋은 결과를 얻고, 악한 행동은 나쁜 결과를 얻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한 생각과 행동으로 다음 생애는 브라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4> 브라만교의 신분제도 합리화
이러한 사상은 윤회, 업보, 해탈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요.
당시의 인도사회에서 이 사상은 개개인의 상황을 숙명론적 이해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수드라인 천민들은 누구에 의해서 천민이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지난 생에서 열심히 살지 않고, 나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며, 지금 생에서 착하게 열심히 살면 다음 생에서는 우주 근본 실체인 브라만으로 환생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상황을 교묘하게 설명하며, 현재의 선행이 내세의 행복으로 연결된다는 희망을 주었지요.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인권이 발전된 현대에 까지 존속하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5> 사회 의식의 변화
6C 경부터 인더스강에서 갠지스강 유역으로 문화의 영역이 확대되고, 각종 도구 및 기술의 발달로 농업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서서히 바뀌어 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생존의 문제에서 벗어나면 사고를 하고, 의식 수준도 높아지지요.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도 생기고, 불합리한 것에 대한 의문도 생깁니다.
이러한 경향은 기존 종교에 대한 자각운동이 시작되면서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어요.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달타와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 둘 다 왕족 출신입니다. 이런 종교 운동은 자유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 그리고 현실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어요.
6> 고타마 싯달타(석가모니)의 깨달음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태어난 고타마 실달타는 생로병사의 문제와 인도 사회의 불평등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도 기존의 수행방법인 고행의 방법으로 수행했으나 6년이 지나도록 깨달음을 얻지 못했어요. 그러다 35세 때 중도의 길을 선택하여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하던 중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명칭을 바꾸어 석가모니로 하겠습니다.
7> 불교의 생성
브라만의 범아일체를 비판하고, 존재적 실체보다 조건과 인연을 중시하였지요. 또한 무아와 연기설을 주장하며, 극단에 빠지지 않는 중도의 수행을 강조했어요.
불교는 카스트제도를 반대함과 아울러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윤회설을 수용하고 진전시켰습니다.
브라만의 윤회, 업의 논리를 반박하며,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죽어서 다음생에 해탈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 깨달음을 통한 개인의 해탈을 얘기했어요.
이런 평등주의는 엄격한 신분제로 고통받고 차별받는 일반대중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은후 80세에 입멸할 때까지 45년간 사람들을 교화하였어요.
이로써 깨달은자 부처가(불) 있고, 깨달은 진리로 설법(법)을 하며, 따르는 제자(승)들을 둠으로 해서 삼보를 갖추게 되었어요. 즉 교조, 교리, 교단을 갖추어 이제 완전한 종교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석가모니가 80세에 입멸한후 불교는 석가모니의 언행을 결집해 경전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탑과 불상을 만들어 신앙으로의 대상을 만들면서 급속히 퍼져 갔어요. 동남아시아로 퍼져간 불교를 소승불교, 중국 등 동북아시아로 퍼져간 불교를 대승불교라 합니다.
하지만 수세기 후에는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 소멸되고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는 현재까지도 대중들에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네요. 다음 편에서는 불교가 어떻게 분파 발전되어갔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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