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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사 유적

흉노의 이동, 세계사의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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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이동 세계 역사를 바꾸다 

 오늘은 흉노(훈족)에 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왠 뜬금없이 흉노 얘기냐고 하실 것 같아요. 요즘 신라와 흉노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경주에서 고분의 유물이 발견될 때마다 심심찮게 거론되기도 합니다. 또한 지리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진 유럽의 터키와 우리나라는 형제국가이고, 헝가리, 불가리아와는 유사성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의 연결고리는 아마 흉노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흉노는 어떤 민족인지, 왜 이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편에서는 신라와 흉노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흉노(훈족)는 유목민족, 기마민족

 중앙아시아와 바이칼호수, 그리고 만주지역의 드넓은 초원지대에 생활하는 유목민족을 통틀어 흉노라고 부릅니다. 기원전 4C에서 기원후 5C까지 존재한 유목민족이지요. 동양 특히 중국은 자기들의 북쪽 유목민족을 흉노라 부릅니다. 하도 침입, 약탈의 피해를 입어 흉측한 노예들이라고 폄하해서 부르는 말이지요. 춘추전국시대부터 역사에 간혹 등장합니다. 두만 선우, 묵돌 가한으로 이어지면서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하지요. 같은 유목민족인 동쪽 동호와 서쪽 월지를 격파합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동서의 무역로를 장악하고, 끊임없이 중국 변방을 침략합니다. 한고조 유방이 중국을 통일할 때 흉노는 최대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유방도 싸움에 패해 조공과 공주를 바칠 정도였지요. 

 

2> 기후변화와 한무제의 정벌로 흉노의 세력 약화 

 이후 전한의 한무제가 등장하면서 온 국력을 모아 흉노를 압박하여 몰아냅니다. 중앙아시아의 교역로를 차지하여 동서교역의 막대한 이익을 흉노로부터 빼앗아 버렸어요. 이어 세력이 약화되어 내분으로 갈라진 남흉노를 복속시키고, 북흉노를 서쪽으로 몰아냅니다.  북흉노는 서쪽 중앙아시아 동키르스탄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것이 흉노의 1차 민족 이동이지요. 흉노의 세력이 이렇게 약화된 데는 전한의 압박과  기후 문제 때문입니다.

 지구는 몇만년, 수십만 년 단위로 빙하기와 간빙기로 교체되는데, 그 사이사이에 소빙하기와 간빙기도 발생합니다. 흉노는 목축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목초지를 찾아다니지요. 그래서 기후에 민감합니다. 조금만 춥거나 건조하여도 초원의 목초지가 소멸해 생존의 위협을 느껴 조금 더 따뜻하고 습윤한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소빙하기에 유목민족은 세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지요. BC. 2C 이후 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해 약 AD. 0년 ~ 2C 까지는 소빙하기라고 할 정도로 추운 시기입니다.

 후한시대인 1C~2C에도 한의 압박이 계속되고, 또다른 유목민족인 동쪽의 강력한 선비족의 출현으로  흉노의 서진은 수차례 계속됩니다. 그러다 3C에 잠시 온난화되어 기후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4C에 와서 또다시 급격한 기후변화(소빙하기, 화산활동)로 한랭건조한 기후를 맞게 되지요. 이러한 기후는 목초지가 생존에 중요한 요소인 흉노에게는 치명타가 됩니다. 그래서 일부는 서쪽으로 또 이동하고, 일부는 현지에 남았다가 4C 중국의 혼란을 틈타 다른 유목민족들과 남으로 내려와 5호 16국 시대를 열고, 130여 년간 중국의 북부지역을 약육강식의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3> 서쪽으로 간 흉노족,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게르만족을 밀어내다.

그럼 서쪽으로 간 흉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BC. 2C 이후 흉노는 크게 4차례의 대규모 민족 대이동을 하게 되었지요. 중앙아시아로 이동하면서 소규모의 국가들을 하나씩 정복합니다. 정복 후 자치권을 주는 유화책을 쓰면서 세력을 넓혀 4C 중반에는 드디어 카스피해를 지나 흑해 연안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수세기에 걸쳐 이동하며 힘을 기른 강력한 철기 기마민족의 동유럽 등장은 유럽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옵니다.

 이들 훈족의 등장은 유럽인들에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생긴 모습은 괴이하지만 말을 자유자재로 타고, 각궁이란 작지만 멀리날아가는 활을 쏘며, 흩어졌다 모이고 다시 흩어져 대열을 순식간에 갖추는 기마 전술은 아무도 당해낼 수가 없었지요. 이에 북부, 중부 유럽의 게르만 종족들은 훈족에게 밀려 서서히 남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힘이 약해진 서로마를 무너뜨립니다.

 흉노의 첫 이동은 나비의 날개짓에 불과했지만 수세기에 걸친 이동은 큰 파도가 되어 유럽을 강타하게 되었지요.

 또한 5C 중반에는 훈족의 불세출의 왕, 아틸라가 등장하여 동로마를 침공하게 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내부 분열이 일어나 급격하게 무너지고, 훈족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4> 훈족이 남긴 발자취 

"흉노는 훈족이다"는 말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훈족은 문자가 없어 자기들의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그들과 접촉한 중국이나 유럽의 기록들을 보면 그들의 원류는 중앙아시아에서 만주지역까지 생활하던 유목민족인 흉노족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수세기 동안 이동하면서 미리 이동해 정착한 흉노는 다른 유목민족들과 섞이면서 융화되기도 했지요. 그러나 훈족의 무덤양식이나 유물들, 그리고 생활방식이나 전투기술 등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고 이동을 많이 했더라도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헝가리 입니다. 헝가리는 자신들의 조상을 훈족이라 생각합니다. "훈"은 훈족이고, "가리"는 땅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헝가리는 훈족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흉노의 특징인 동복이 나오고, 어린아이들은 몽고반점도 나타납니다. 우랄 알타이 어족의 어순도 그대로 사용하고, 유럽인들과는 다르게 성을 먼저 쓰고 뒤에 이름을 붙이지요. 우리처럼... 그 외에도  문화적인 부분에서 유럽의 일부 종족, 그리고 흉노와 우리 민족과의 유사성은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불가리아와 핀란드의 일부 종족도 흉노와 비슷합니다. 특히 터키는 말할것도 없고요. 물론 모두가 같은 종족이란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동쪽에서 온 유목민족의 후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위와같이 훈족(흉노)의 대이동은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매우 큽니다. 유럽에 흉노의 흔적이 나타나듯이 우리나라 고대 신라에서도 흉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헝가리나 터키의 국민들이 자신들을 흉노의 후예라 하고 우리나라와의 친연성을 강조할 때마다 과연 우리 민족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 민족의 조상에 관하여 학자들의 의견이나 연구는 다양하게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부를 떠나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특정시기에 특별한 유물과 유적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흉노와 우리 고대국가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신라와 흉노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역사 기록과 유물들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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