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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신라의 한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기마 민족 흉노의 흔적 우리가 살다 보면 한번쯤 '우리 민족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고대 신라의 유적이나 유물을 볼 때 더 그런 생각이 들지요. 특히 신라와 흉노의 관계에 대해 그동안 여러 학자 들이나 단체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명쾌하게 내린 결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하여 관련된 역사기록, 유적이나 유물을 살펴보겠습니다. 금석문에 나타나는 김씨와 흉노와의 관계 문무대왕 비문 문무대왕릉 비문에 '투후제천지윤 전칠엽' '15세손 성한왕'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투후는 흉노 왕자 출신의 김일제가 한무제로부터 하사 받은 직책을 말하며, 제천지윤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전칠엽은 7대를 내려갔다는 뜻이고요. 15세손 성한왕은 문무왕..
원성왕 혼란의 신라, 몰락의 시작 오늘은 원성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신라 하대의 시작을 알리는 왕으로 785년~798년까지 약 13년간의 재위 하였어요. 이후 신라는 내부권력 다툼으로 인해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내물왕계로서 왕위에 오른 연유와 그 시대상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신라 하대 전제왕권의 쇠퇴 신라가 삼국통일후 문무왕, 신문왕을 거치면서 귀족들의 세력을 누르고 전제왕권을 강화하였어요. 그리고 성덕왕, 경덕왕 시대를 거치면서 통일신라 최고의 문화 황금기를 이루었어요. 하지만 경덕왕 이후 혜공왕이 8세에 등극하며, 그동안 전제왕권의 모순이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귀족들의 불만과 반란이 계속됩니다. 왕족 및 귀족세력의 득세 이는 아마 전제왕권을 유지하려는 왕권파와 예전의 자기들의 권력을 회복한 근친귀족들의 권력 분쟁이 ..
원성왕릉 괘릉, 신라 왕릉의 완결판 원성왕릉은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에 소재하고 있어요. 7번 국도를 따라 불국사역에서 울산 방면으로 가다가 좌측 편에 있습니다. 원성왕은 역사적으로 문화사적으로 신라 하대의 중요한 변곡점을 이루는 시대입니다. 재위 기간은 785년에서 798년으로 8C후반 마지막 왕이고, 나라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원성왕릉과 원성왕에 대하여 나름 상세히 알아볼까 합니다. 왕릉의 아름다움과 왕릉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원성왕릉(괘릉) 남향의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은 원성왕릉은 신라 왕릉 중 가장 전형적인 무덤양식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능을 구성하는 부속물 하나하나가 예술적이며, 주변 경관과 어울려 최고의 능이라 평하고 있습니다. 능역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이 능을 포근하..
포항 겨울바다로 가자. 포항 차박의 명소 포항의 겨울바다 양극단의 차박 명소 단풍도 거의 떨어지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이 제법인걸 보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겨울의 초입인 것 같네요. 조금 있으면 연말도 다가오는데, 마음 먹었던 일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게 또 한 해가 훌쩍 지나가고 있어요. 이럴 땐 겨울 바다로 한번 달려가는 것이 어떨까요. 답답했던 가슴을 바다를 향해 활짝 열고 차가운 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 모두 모두 훨훨 날려버리고 싶어요. 그래서 오늘은 포항의 대표적 차박 명소 2곳을 소개하겠습니다. 1> 추운 날 도시의 온기를 느껴보는 설머리 백사장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끄트머리, 설머리 회타운 앞 백사장에는 어느 센가 하나둘 캠핑카가 모여들더니 이젠 주말만 되면 꽉 들어차 차디딜틈도 없을 만큼 차박의 명소가 되..
불교의 생성과 석가모니의 탄생 불교 종교로의 성립과 발전 고대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불교는 우리 역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종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도 불교를 믿는 국민들도 상당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 불교용어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공부를 하거나 답사여행을 갈때면 불교유적을 많이 접하게 되지요. 특히 신라의 경우는 더 그러합니다. 그럼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온 불교는 언제 생겨나게 되었고,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이 모든 의문 해결의 출발은 석가모니가 살고 있던 인도의 시대 상황과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브라만교를 먼저 이해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불교와 같은 거대한 종교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길 수가 없겠지요. 기존 사회의 사상적 변화나 모순..
흉노의 이동, 세계사의 변곡점 흉노의 이동 세계 역사를 바꾸다 오늘은 흉노(훈족)에 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왠 뜬금없이 흉노 얘기냐고 하실 것 같아요. 요즘 신라와 흉노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경주에서 고분의 유물이 발견될 때마다 심심찮게 거론되기도 합니다. 또한 지리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진 유럽의 터키와 우리나라는 형제국가이고, 헝가리, 불가리아와는 유사성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의 연결고리는 아마 흉노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흉노는 어떤 민족인지, 왜 이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편에서는 신라와 흉노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흉노(훈족)는 유목민족, 기마민족 중앙아시아와 바이칼호수, 그리고 만주지역의 드넓은 초원지대에 생활하는 유목민족을 ..
신라의 왕릉은 왜 산으로 갔을까, 경주에 있는 신라 고분들의 특징 신라의 왕릉은 왜 산으로 갔을까, 경주에 있는 신라 고분들의 특징 경주에 가면 만나는 신라의 고분들은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경주 고분들의 일반적인 특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왕릉은 전대의 왕이 가진 권위를 이어받은 후대의 왕이 이를 통하여 그 정통성을 이어받는다는 관념에 크게 조성되어지고 화려하게 장식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왕릉도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기도 합니다. 신라의 왕릉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평지에서 산지로 이동해 가고, 화려하고 제대로된 양식으로 바뀌기도 하고, 이후 소박하고 초라하며 크기도 점점 작아지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제 나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거대 고분들은 권위의 상징 신라 초기 무덤인 오릉과 궁궐 가까..
주인을 알수없는 경주신라의 고분들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주 신라의 고분들 오늘은 경주 신라고분들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에 대하여 아는 데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고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왕릉의 주인을 정하는 문제에 많은 차이가 있는것 같아요. 그래도 가장 일반적인 내용을 알아보려고 노력해 보았습니다. 1> 주인을 알수없는 고분들 경주에 있는 고분들은 주인을 알 수 없는, 즉 피장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고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봉분이 작은 것은 물론이고, 왕릉급의 대부분의 고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56대의 신라왕들 중에서 명확하게 누구의 왕릉으로 지정할 수 있는 능은 8기뿐이지요. 선덕여왕릉-낭산과 사천왕사의 지명으로 확실시 문무대왕릉-역사적 기록, 수중릉 태종 무열왕릉-능비 서악동 고분군..